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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역사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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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은 예로부터 서로 다른 부족국가(部族國家)또는 다른 행정구역에 속해 있다가 병합 또는 통페합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구역을 이룬 고장이다.
삼한시대는 현재의 무주읍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계가 마한국에 속햇고, 현재의 무풍면을 중심으로 한 무산은 변진국을 맹주국으로 하는 감문국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주계는 백제, 무산은 신라에 속하여 각기 다른 국가에 속하였다. 그 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이른바 통일신라시대부터 주계와 무산은 같은 국가에 속하였고, 주계는 전주의 진례현 무산은 지금의 김천시에 속하엿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주계와 무산은 같은 행정구역인 강남도에 들게 되었다. 두 고을은 서로 다른 작은 현으로 각각 분리되어 조선 초기까지 이어왔다. 조선 초기 행정구역 개편 때 주계와 무풍을 통폐합하여 무주현으로 개칭하였고, 후에 적상산성에 사고를 설치하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금산에 속하고 있던 안성과 구천동이 본 군에 편입되면서 무주도호부로 승격하여 오늘날 무주군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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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三韓時代 . 상고 ~321년)
-주계 (지금의 무주읍 지역 중심)는 마한국에 속해 있었고 무산(지금의 라제통문 동쪽지역)은 변진국을 맹주국으로 하는 감문국에 속해 있었다.
◎삼국시대 (三國時代 . 231~676년)
-백제는 근초고왕 원년에 마한을 평정하면서 주계를 정복하고 지명을 적천이라 하였고, 신라는 조분왕 2년(231)에 변진의 감문국을 토벌한 후 무풍의 지명을 무산으로 붙인 다음 현(縣)을 설치하였다.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676~937년)
신라는 태종무열왕 7년에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를 멸망시켰고, 문무왕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하였다. 그때부터 적천은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 고려시대 (高麗時代 .937~1392년)
-왕건에 의하여 고려가 건국되고 신라가 멸망된 후, 고려 태조 23년(940년)주(州).군(郡).현(縣)을 개정하면서 진례현에 속했던 단천현을 주계현으로 개칭하였으나 개녕군에 속했던 무풍현은 그대로 두었다. 명종 2년(1172년) 감무제를 실시하면서 주계와 무풍을 감무(監務)1인으로 겸임케 하여 공양왕3년(1391년)까지 같은 행정체제를 병합하였다.
◎ 조선시대 (朝鮮時代 .1392~1910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으나 고려때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 후에 태종 14년(1414년) 전국을 8도제(八道制)로 바꾸는 행정구역 개편 때 무풍과 주계가 통폐합되는데, 이 때 무풍의 '무(茂)'자와 주계의 '주(朱)'자를 따서 무주라는 새로운 지명으로 탄생되었다. 이에 무주는 비로소 단일 행정구역으로 편제되어 같은 현민(縣民)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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